극진회관 부산 지부장 허동호

 다시 태어나도 무도가가 될 사나이

극진회관 부산 지부장 허동호

예로 시작되어 예로 마무리되므로 항상 예의를 중시했고, 탐구란 절벽을 오르는 것과 같아 쉼 없이 정진했다.
천일을 초심으로 인내하고 만일을 극한으로 수련하며, 극진의 가르침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무도에 매진하였다.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고자 한계를 향해 도전했고, 스스로의 손으로 후회가 남지 않을 결과를 쟁취해냈다.
순조로워 보였던 극진의 길은 예상치 못한 국면을 맞이하며, 과거의 영광은 기억의 저편으로 그렇게 잊혀만 갔다.
허탈을 맛보며 좌절하고 상실을 느끼며 원망도 많았지만, 냉정을 찾고 나니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강인한 모습을 동경하여 바쳤던 청춘은 원숙한 형태로 거듭났고, 찬란했던 과거는 오늘의 초석이 되어 극진으로의 회귀를 이끌었다.
역경을 거치고 돌아온 무도가에게 펼쳐지는 지도자로서의 제2막,
극진의 가르침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이 이제는 인생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허동호 사범님. 늘 한결같은 자세로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 깊어 모시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구독자 여러분. 저는 국제공수도연맹 극진회관의 부산 지부장을 맡아 극진가라데(극진공수도)를 수련하고 있는 허동호 사범입니다. 지면을 통해 인사드릴 수 있어 영광이라 생각하며, 이렇게 작은 곳에까지 관심 갖고 지켜봐 주신 데에 감사드립니다.

최근 바디 프로필 준비에 열심이신데요, 도전을 시작하신 계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맞습니다. 식단 조절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한 몸만들기에 한창이죠. 아무래도 선수 생활을 하려면 체력과 맷집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기에 식사량을 줄이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선수를 은퇴한 지금이 적기라는 판단에, 이때가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는 일념으로 4월에 있을 NPCA 보디빌딩 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간 나름대로 영양에 신경 쓰며 운동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운동량을 유지하며 식단 조절을 병행 하려 하니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이런 일상을 보내시는 보디빌더 분들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2020년은 모두에게 힘든 한 해였습니다. 2021년도 아직은 향방이 불투명한 상태인데요, 도장의 근황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코로나가 전 국민에게 큰 화두였죠. 실내체육 시설인 저희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방역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고민이 많았고, 현재도 도장 구석구석 방역에 꼼꼼히 신경 쓰며 운영하는 중입니다. 지부장으로선 늘 운영의 방향성을 놓고 갈등이 많은데, 언제나 인재 발굴 및 선수 양성을 위해 힘 쏟고 있으며, 이를 위한 크고 작은 극진 행사와 부산지부 대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극진에 담긴 의미 최영의가 추구한 무(武)

극진가라데는 종목 그 자체보다 소도 때려잡았다는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극진가라데는 어떤 무술인가요?
극진가라데는 《바람의 파이터》라는 제목의 만화, 영화로 잘 알려진 한국인 故 최배달(본명:최영의) 총재님이 창시한 무도입니다. 홀연 단신으로 일본 무도계를 평정하고 전 세계 강자들과 목숨 건 사투에서 모두 승리한 일대기가 아주 유명하죠. 그 경험과 노력을 기반으로 1964년에 국제 공수도연맹 극진회관을 창립하셨습니다.

극진가라데의 수련을 보며, 무도인으로서의 기량 뿐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수행하는 것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현시대에는 인간의 기본적인 예의와 사람 냄새나는 모습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육체의 단련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정신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도의 완성은 인격의 완성이다.”라는 총재님의 말씀이 더욱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수련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인격을 쌓는 것이 극진 수련의 의미라 생각합니다.

육체의 단련뿐 아니라 정신적 수양도 중요시하는 극진에 담긴 의미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極(다할 극) 眞(참 진)이라는 뜻을 가진 극진(極眞)은 이름 그대로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하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머리는 낮추고, 눈은 높게. 입은 신중하고, 마음은 넓게. 효(孝)를 근본으로 모두를 이롭게 하라!”, “극진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사회공헌에 이바지하라!”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극진가라데는 풀컨택트* 무도인 동시에 효를 기본으로 예의와 배려 같은 인간의 도리를 지키기 위한 정신적인 수련을 중시하는 무도라 할 수 있습니다.
*풀컨택트: 입식 타격 경기에서 상대방의 신체에 직접적인 가격을 허용하는 규칙

방황의 종착점에서 만난 극진

과거엔 극진의 선수, 현재는 지도자로서 긴 시간 극진에 몸담고 계십니다. 사범님과 극진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어린 시절 저는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그런 제 성격을 걱정하였던 부모님에 의해 태권도를 접했고 경호원을 꿈꾸며 체대에 입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로 진로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았고, 누구나 그렇듯 병장 시절 그 기로는 최고조에 달했죠.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TV 프로 〈인간극장〉에 나온 극진가라데의 모습을 보며 한눈에 마음을 뺏기게 되었습니다.
말년 휴가 때 이미 도장에 눈도장을 찍을 정도였고 제대하자마자 입문하게 되었죠. 그때부터 매일 4시간씩 수련하며 도장에 거의 살다시피 하였습니다. 그 당시엔 어떻게 하면 나보다 큰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맞추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매일같이 이런 고민을 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웃음)

극진의 어떤 점이 고민하는 청년에게 그토록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일까요?
체대를 지망하며 적게나마 여러 운동을 접한 제게 극진의 수련 방법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근엄함 속에서 강함을 쫓고 체계적인 수련을 통해 이를 추구해나가는 방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죠. 그렇지만 사실 당시 극진에 몰두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을 꺾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안한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던 시기 였고, 그런 나약한 자신을 이겨내고 싶었습니다.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극진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고 자신을 바꾸고자 심취하다 보니, 선수 생활도 하게 되고 사범을 거쳐 지부장의 자리에 까지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도전자에서 지도자로

재능 충만한 소년이 방황의 시기를 거쳐 다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오기까 지… 많은 분들이 허사범님의 인생을 소년 만화에 빗대어 말씀하곤 합니 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30인 조수*를 마치고 드디어 3단 심사에 성공하셨는데요, 많은 역경을 거쳐온 만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내다 가장 어려운 시절을 경험하고 돌아왔 습니다. 부산지부가 사라진 이후 3단 승단에 통과하기까지 15년이 걸렸네 요… 늦었다고 억울하거나 후회되지는 않습니다.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승단심사를 마치고 합격 연락을 받았을 때 그 감회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힘들 때 항상 옆에서 힘이 되어준 사범진들도 함께 2단 승단에 통과해 기쁨은 두배였죠. 긴 시간 고생한 그 시절을 잊지 않고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조수: 정해진 인원과 연속으로 대련을 버텨야 하는 극진가라데의 특유의 승단 방식

긴 시간 극진을 수련하며 많은 일들을 겪으셨습니다.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하셨고, 영화 제작에 도움을 주거나, 모션 캡처로 허사범님의 동작이 게임 내 이식 되기도 하였죠. 그중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여러 기억이 떠오릅니다. 다시 돌아간다 하여도 같은 결과를 장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중에 서도 한 가지만 고르자면, 수년의 노력 끝에 지부장을 사사받은 순간입니다. 극진으로 복귀하였지만 한동안은 불투명한 미래가 이어지는 나날이 계속되었죠. 사범진들과 함께 목표를 다잡고 하루하루 나아 갔지만 사실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각고의 인내 끝에 문장규 관장님께 진심을 인정받고 직접 지부장을 사사 받을 때. 그 순간의 기억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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