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디제이 그린(DJ GREEN)
'강남 오토바이 비키니녀'로 화제가 되었던 그녀가 디제이로 돌아오다.

DJ GREEN(디제이 그린:임그린)은 ’강남 오토바이 비키니녀' 로 화제를 모으며 2022년 맥심 10월호를 장식한 DJ/인플루언서다. 최근에는 유튜브, 예능 등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GREEN'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임그린입니다. 개개인이 바라보는 대로, 보고 싶은 대로, 그게 바로 저입니다.
‘그린’ 이름의 뜻이 있나요?
이름에 뜻이 필요한가요? :) 별다른 뜻 없습니다.
DJ를 하기 전 어떤 일을 하셨나요?
월급을 받는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DJ를 하게 된 이유는?
놀고 싶었습니다. 정해진 것은 없지만 모든 것엔 적합한 때가 있다. 훗날 나이가 들고 ,나가놀 지 못하는 것에 후회를 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사교적으로 잘 어울리지만 은둔형 성향이라 특정 연도를 제외하고 평균적으로 365일 중 360일은 일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흥과 에너지가 많은 것에 비해 여러 이유와 더불어 내향인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 않기에 DJ를 한다면 직접적인 대화를 하지 않아도 동시에 많은 사람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소통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주 장르와 앞으로의 계획은?
모든 음악에는 가지각색의 매력이 있습니다. 한 가지에 치우쳐서 특정 장르만 하고 싶진 않습니다. 허나, 내 꿈 을 위해 자본이 필요하기에 초반엔 상업적으로 수요가 있는 장르를 하며 DJ Green을 브랜드화 시킬겁니다. 그래서 DJ Green이 DJ를 한다는 그 자체로 환영 받고 싶습니다.
취미생활은?
샤워하기, 청소하기, 하루에 한 번 따뜻한 커피 마시며 꼭 “혼자”만의 사색 또는 엉뚱한 상상에 잠기기, 글쓰기, 에너지 발산하기(운동 등), 타인과 있을땐(가족/애인제외) 사색 및 엉뚱한 생각과는 거리가 먼 극현실주의자로 살아가기.
어릴 때 장래 희망은?
저 학년 때 첫 꿈은 화가였고, 청소년 시절 꿈은 작가, 시인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돌아다니며 제가 본 것과 느낀 것들을 그림이나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살면서 행복했던 기억들은?
유아기때 가족과 에버랜드에 갔던 날. 생각이 나기를 아빠 등에 업혀서 꾸벅꾸벅 졸았던 순간. 한 손에는 바비인형 액세서리를 들고 있었던, 추로스 하나에 행복했던.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 유치원에 갔는데 천장에 포도와 꽃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던 것을 보고 신기했던 감정. 그 순수하고 온전했던 그 시절의 내가 사무치게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좌우명이 뭔지?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유년 시절 어땠는지?
내 유년시절 이야기를 하게되면 내형제의 유년시절도 공개될수있어 말은 아끼겠지만,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은 어땠는지?
초등학생때는 전교 회장단, 중학교때는 누구나 겪는 따돌림 말고 심한 왕따. 고등학교때는 회장을 했습니다.
‘강남비키니 라이딩’ 하게 된 계기는?
스스로를 홍보하기 위해 노이즈마케팅을 노렸습니다. 혼자서 3년 안에 분석을 통해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 17만을 모았고, 초반에는 진정성을 담아 다이어리처럼 사용했기에, 만약 상업적인 것이 들어가면 변질될까봐 저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입증된 것만 소개를 해주고 싶어 초반에는 광고나 공구를 포함, 수익창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열심히 활동을 해야 팬들과 오래 보겠구나’라 생각했습니다. 함께 바이럴 마케팅을 진행한 회사에 투자를 하고, 그에 대한 지분을 얻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들어가는 자본 대비 마케팅 효과가 클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강남 비키니녀’ 마케팅에 단 한 명이라도 상처를 받는다면 나는 추진하지 않았을 것 입니다. 욕을 먹어도 내가 욕을 먹고 내가 책임진다고 생각하기에 시도해볼 만한 마케팅이 라 판단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무의식중 타 인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는데 마케팅이 설령 피해라 할지 언정 타인에게 불편함 대비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그 순간은 이기적이라도 괜찮다고 판단했습니다.
'강남비키니 라이딩’을 하게 됨으로 얻은 것은?
질문에 답하기 전에, 심각한 것은 아니나 얽힌 것들이 있기 때문에 깊게 이야기를 하진 않겠습니다. 한마디로 과정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마케팅은 성공적이었지만 내 의사로 대략 1년간 휴식기를 가졌습니다. 얻은 것은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으며, 순간은 괴로우나 지나면 추억과 경험이 되게끔 내면의 단단함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이 경찰조사서에 관심이 많았는데 인상 깊은 질문과 본인 답변은?
수사관님이 ‘마케팅을 결정했을 때, 사람들에게 피해줄 것을 알았는지?’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나는 “질문 자체가 다소 부정적으로 느껴 지나 답을 하자면, 우리는 길거리에 쉽게 인체의 나체나 성적인 것을 모티브로 한 예술작품을 종 종 볼 수 있습니다. 그 작품들이 모두 그것을 보고 불편해 할 사람들을 고려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언어나 행동이든 누 구에게는 영감, 누구에게는 불필요한 언어입니다. 역으로 질문하자면 수사관님이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셨습니까? 수사관님이 실질적으로 피해를 준 것이 없는데 만약 누군가 지금 수사관님에게 주관적 피해를 받았다고 호소 를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 마케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더 많이 모아오면 되나요? 또한 제가 조사받으러 오는 길에 어떤 대상을 보고 직접적으로 피해는 안 보았지만 불편했습니다. 제가 지금 신고를 하면 똑같이 조사를 할 것인가요? 일관성이 없는 것에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에 대해 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으셨으면 한다.”고 답했습니다.
바이럴 마케팅을 하면서 악플을 많이 받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에 대해 관심없는 사람이 99%, 저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 1%, 그 1%로 중 저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저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더 많고, 앞으로 성장해가면서 더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예정인데 굳이 부정적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삼아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인기를 얻은 만큼 적당한 악플도 마케팅에 대한 ‘성과 값’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감정에 면역력이 떨어져 악플에 기분이 상하는 순간이 올 때, ‘나의 발전에 기여하는 원료.’ 딱 그 정도로만 사용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환희 합니다. ‘더 이쁘게 잘 살고 싶은데 이런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잘 살 확률이 높겠구나.’ 추가적으로 ‘나를 알면 싫어할 수 없을꺼야’, ‘나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엥? 나를 알았는데 내가 싫다고? 그럼 말고~ :)’
어떻게 인스타그램을 단기간 빠르게 성장시켰 는지?
저는 생활고로 인해 당장에 수입이 보장되는 직장을 다녔고, 시간이 지나 ‘전문 직종 이 외 월급쟁이는재테크를 하지 않는 이상 돈을 많이 벌수 없겠구나’라는 생각과 ‘이제는 더 주체적인 삶을 살아보고싶다’라는 생각을 가졌을 때, 제가 가진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직업군이 ‘인플 루언서’겠다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분석하고 이행했습니다.
-내가 보았을 때 더 매력있는 사람이 더 매력없는 사람보다 왜 팔로워가 낮을까?에 대한 생각
- 나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인플루언서 분석
- 어떤 나라에서 인스타그램을 많이 사용하는지 분석 후, 해당 나라의 특정시간대에 꾸준한 피드 와 스토리 업로드
- 나를 ‘편히 좋아 할 수 있게 끔’ 댓글과 좋아요가 어떻게 하면 많을 지 연구
- 국가별 언어와 수요도로 해시태그를 분할해서 태그하고 실제 호응도를 체크 후 반응 있는 것을 밀고 나가기
SNS를 보면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운동을 좋아하나요?
질문과는 뜬금없지만, 저는 살아오면서 유독 웃음과 운동에 집착하는 해가 있습니다. 그 해는 저에게 많이 아픈해 입니다. 인생은 나날이 갱신하는 행복과 슬픔의 연속에서 그저 나에게 주어진 모든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포기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지려 합니다. 가족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저에게 정신이 강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강하게 태어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미 어릴 때부터 충분히 슬퍼하고 울어봤기에, 트라우마나 슬픈감정이 나를 지배하려 할 때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운동합니다. 요지는 눈에서 흘릴 눈물이었지만, 땀으로 대신 나와주는 거 같아 운동을 좋아합니다. ‘세상에는 슬픈 일 보다,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이 많다.’ 제가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종종 “그린님은 어떻게 그리 긍정적이세요? ” 라는 질문을 하는 이들에게 나 또한 친구들과 다르지않은 어쩌면 더 약한 정신을 가지고 현실을 열심히 직면하면서 이겨나간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임그린 본인에 대해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은지?
사실 큰 관심이 없습니다. 어차피 보는 관점과 해석 능력은 각자에게 달렸고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이야기 하고 다르게 판단하면 이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한 번 사는데 다른 사람들의 입으로나마 여러 삶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 진 않을 것 같아요. 어차피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사실이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 삶의 계획
결혼, 자식을 낳고 교육. 후대에 지식이나 보다 나은 지혜를 공유, 학습, 자본주의 속에 살아가되, 사랑하는 이들과 내면은 본질적 가치를 잊지 말 것. 이렇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제 꿈을 위한 단계를 밟을 것이고 그에 따라 필요한 것을 습득하고 발전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인생은 상대성, 이중성 이기적 모순 그 자체. 본인에게 적절히 관대한 망각의 동물.
그러기에 우린 미숙한 인간, 그것이 인간미. 매 순간 1분 1초, 누군가에겐 기쁨 누군가에겐 비극의연속성. 현재 인생에 죽는 것 만큼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슬픔과 비애 또한 우리의 소중한 순간입니다. 삶에 모든 구간을 오감으로 느끼고 사랑합시다. 이 글을 보는 당신. 앞으로 당신이 살아갈 앞날을 그린이는 격하게 응원합니다. 설령 우리가 적으로 만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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