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디바 최정원

뮤지컬계의 프리마 돈나

영원한 디바 최정원

레전드매거진에서 드디어 모셨습니다. 1세대 뮤지컬 배우이자 살아있는 전설, 무대 위의 영원한 디바! 최정원 님을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정원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레전드매거진에 대해 듣곤 했는데, 제가 이 자리에 초대될 줄을 몰랐네요. 여러분과 인사 나눌 수 있어 너무 반갑고, 다른 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지난해 공연계를 직격한 코로나로 인해 많은 무대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막을 내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직 방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공연계도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는데요. 최근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지난해 10월에 공연을 시작한 〈고스트〉가 3월 14일 막을 내리면, 4월 2일부터 새로운 뮤지컬 〈시카고〉가 올라갈 예정이거든요. 그래서 공연을 마친 뒤 저녁부터는 다시 시카고 연습에 들어가는 일정을 소화하며 평소보다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나 단원들 모두 다시 무대에 올라 관객분들께 인사드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껴 힘든 줄 모르고 연습하는 중이에요.

10년간 하나의 영역에 종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20을 넘어 30년 이상 무대 위에서 활약 하고 계십니다. 뮤지컬과 처음 사랑에 빠진 순간은 언제였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연기에 워낙 관심이 많았는데요. 초등학교 때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춤추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뮤지컬에 빠지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인데, 당시는 뮤지컬이란 장르가 그렇게까지 활성화되어있지 않던 시기였어요. 뮤지컬이란 그냥 대사를 나누다 노래하고, 그 감정이 쌓여서 춤을 추는 종합예술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죠. 그러다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게 됐는데요. 주인공 돈 락우드가 리나 라몬트를 바래다주며 굿나이트 키스를 건네는 장면, 비가 쏟아지는데 우산도 벗어던지고 신이 난 아기처럼 물장구를 치며 춤을 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가로등을 잡고 외치는 “Singin’ in the Rain!”에서 크게 소름이 돋았죠. 어떻게 저렇게 대사와 노래의 전환을 자유롭게 할까, 고조된 감정을 춤으로 덧씌우는 게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 작품을 접한 뒤로 무조건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 결심하였죠.

아가씨와 건달들 (1989)
1950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을 시작한 작품. 도박꾼 스카이와 선교사 사라, 도박사 네이슨과 그와 약혼한 지 14년이 넘은 쇼걸 아들레이드, 어울 리지 않는 네 사람의 티격태격 사랑싸움을 유쾌하게 그려낸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아가씨 6번’s 코멘트
아가씨와 건달들은 저의 첫 뮤지컬인데요,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영화로도 제작된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뮤지컬이에요. 당시 제가 맡은 배역은 아가씨 6번이었는데, “가자, 아들레이드.”라는 단 한줄짜리 대사가 어찌나 떨리던지. 매번 무대 뒤편에서 선배들의 대사를 따라 하며 제 차례가 늦게 찾아오길 바랐던 거 같아요. 그러다 나중엔 선배들의 대사를 다 외울 정도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섭외 제의가 왔었는 데, 너무 아쉽게 타이밍이 맞지 않아 참여를 못했어요. 사라든 아들레이드든 꼭 한번 주연을 맡고 싶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네요. 14년째 순애보를 보여준 아들레이드처럼 제게 있어서도 첫사랑으로 남아 있는 작품입니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1993)
주찬옥 작, 황인뢰 연출의 창작 뮤지컬.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명성을 얻은 중년의 독신 남자와 상식적으로는 그와 어울리지 않을 젊고 발랄한 여자의 사랑 얘기다. 사랑이란 놀라운 화학작용이 그들에게 어떻게 일어났으며 진행되었는지를 가능한 한 재미있게 쓰고 싶었다. 본디 뮤지컬이란 재미 있자고 만들어낸 장르일 테고 거창하거나 심오한 주제가 아닌 사랑 얘기일 때에는 더욱 그러할 테니까. (작가의 말)

애심’s 코멘트
창작 뮤지컬은 배우의 의견이 연출에 반영되기도 하고, 연기에 따라 배역 그 자체가 바뀌어 버리기도 해요, 바로 이 작품의 애심이 처럼요. 저는 처음엔 앙상블 멤버 였는데, 앙상블을 연습하는 제 모습을 보신 음악감독님이 노래를 하나 만들어 오셨어요. 다음 날에는 대사가, 또 다음 날에는 춤과 연기가 추가되더니, 나중에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애심이의 역할은 극 중 또 다른 히로 인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것 만으로도 굉장히 드라마 틱한 일인데, 제게 신인연기상까지 안겨준 아주 뜻깊은 작품입니다.

브로드웨이 42번가 (1996)
대공항으로 위축된 193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코미디 뮤지컬. 작중 대형 뮤지컬 〈프리티 레이디〉의 제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로 구성 되어 있으며, 주연인 도로시를 대신하여 작품의 주인공을 맡게 된 신인 배우 페기 소여의 성공담을 담고 있다.

애니 & 도로시 브록’s 코멘트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삼성 사업단이 주축이 되어 제작한 뮤지컬이었는데, 외국에서 굉장히 많은 스탭을 초빙하는 등 규모 면에서 엄청나게 컸던 게 기억나요. 호암아트홀을 뜨겁게 달군 작품이었죠. 당시 작품의 주연을 노리며 오디션을 치렀으나, 풋풋한 시골 처녀 페기 소여보다 여러모로 리더십 있는 앙상블 리더 애니가 적격이었어요.
이 작품은 아직 한국에 탭댄스가 생소하던 시절, 탭댄스 붐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해요. 동시에 탭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던 시기였는데, 저나 남경주 씨는 롯데월드 단원 시절에 탭 수업을 받은 덕분에 배역을 충분히 소화할수 있었어요. 또 저희 두 사람을 부부라 오해받기 시작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네요.
작중 도로시 브록은 한때 최고였으나 명성을 잃어가는 프리마 돈나예요. 페기가 도로시를 보며 여배우를 꿈꾸듯, 저도 더원숙해졌을 때 도로시를 해보고 싶단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죠. 그런데 2016년 CJ에서 도로시 역을 섭외받았을 때는 정말 꿈을 꾸는 건가 싶었어요. 20년 만에 꿈이 이루어지며 다시 도로시가 되어 여러분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시카고 (2000)
금주법이 시행되던 1920년대 미국 시카고 뒷골목. 거리엔 유흥과 환락 그리고 범죄자들로 넘쳐난다. 교도소에 수감되는 록시 하트와 벨마 켈리 그리고 속물 변호사 빌리 플린이 그리는 서스펜스 크리미널. 1926년 선보인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부패한 사법 제도와 범죄자가 유명세를 떨치는 현실을 풍자하는 작품.

록시 하트 & 벨마 켈리’s 코멘트
시카고는 마당놀이 같은 뮤지컬이에요. 세트 전환도, 의상 변화도 거의 없이 오직 배우의 실력만으로 승부를 봐야 하죠.
노래, 춤, 연기 뭐 하나라도 부족하면 절대 무대에 설 수 없어요. 그게 세상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핫하고 섹시한 뮤지컬 이라는 찬사를 듣는 이유죠. 동시에 배우들에게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고, 커튼콜때 앙상블 멤버 한 명 한 명의 본명까지 소개해주는 거의 유일한 뮤지컬이기도 해요.

맘마미아! (2000)
꿈 많던 리드싱어 도나는 작은 호텔을 운영하는 여주인이 되었고, 성인이 된 철부지 딸 소피는 약혼자 스카이와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아빠를 찾고 싶어 한다.
그리스 지중해의 외딴섬을 배경으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이야기를 스웨덴의 전설적인 팝 밴드 ABBA의 곡으로 재구성했다. 뮤지컬의 본거지 웨스트엔 드와 브로드웨이에서 대성공을 거둔 주크박스 뮤지컬.

도나’s 코멘트
제 딸 유하가 8살이 되던 해에 맘마미아의 도나를 맡게 됐어요. 싱글맘 도나는 한때 잘 나가는 밴드의 멤버로 작중 나이가 40세였는데 그 당시 제가 39살이었죠. 저와 모든 게 너무나도 비슷했어요. 공연을 구경한 저희 딸이 ‘이거 엄마 이야기 지?’라고 물어볼 정도로요. 첫 커튼콜 때 다 함께 일어나 댄싱퀸을 부르는데, 이게 도나인지 최정원인지 알 수가 없었죠.
또 세계 최고의 도나로 꼽히며 스웨덴으로 초청받아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노래를 불렀던, 마치 국위선양을 하듯 제 자존감을 많이 높여준 작품입니다.

고스트 (2014)
영화 《사랑과 영혼》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도자기 공예가 몰리와 은행원 샘의 사랑 이야기. 불의의 사고를 당해 영혼이 되어서도 연인을 지키려는 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오다 메 브라운’s 코멘트
오다 메 브라운 오디션 보러 갔을 때, 프로덕션에서 제 몸집이 너무 작다는 것을 이유로 반색을 표했어요. 기존의 오다 메는 더 넓고 푸근한 이미지의 배역이었거든요. 저는 그런 외국인 연출자에게 한국 무당들은 심보가 고약해서 다 말랐다며 귀신 들린 듯 작두 타는 연기를 보여줬어요. 대본에 없는 오디션을 해버린 거죠. 그런 제 모습을 보더니 ‘저 여자가 진짜 미친 것 같다’며 욕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오고 가더니… 오다 메 브라운 역에 뽑히게 됐어요. (웃음)

무대 위의
영원한 디바

1995년에 창설된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여자신인연기상, 여우조연상, 인기스타상을 3년간 내리 수상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셨습니다.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한국뮤지컬대상은 브로드웨이의 토니 어워즈*를 기대하며, 스포츠 서울에서 연극 다시 보기, 공연 많이 보기 운동을 정착 시키기 위해 만든 시상식이에요. 모든 배우가 한자리에 모여 인사를 나누고 작품을 선보이던 장이었어요. 서로의 공연을 보며 감동 받고, 자신이 참여한 작품이 호명되면 울음 바다가 되어버리고. 지금처럼 정보가 자유롭게 공유되던 시기가 아니었으니 더 그랬을 테죠.
뮤지컬 배우들에겐 청룡이나 대종영화상보다 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곳이었는데, 신인상을 시작으로, 이듬해 여우 조연상, 그다음 해에는 말도 안 되게 인기스타상을 받게 되다니… 정말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이루었는지 모르겠어요.
*토니 어워즈: 미국 연극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힌다.

무대 위 가장 가슴 벅찬 순간이 있다면?
저는 커튼콜이에요. 솔로 넘버를 부르며 관객의 주목을 한눈에 받거나, 클라이맥스가 끝나고 장면이 전환 되며 쏟아지는 박수갈채보다 뮤지컬의 막이 내리고 작품의 등장인물에서 최정원이라는 인물로 돌아올 때, 그때 받는 박수가 저에게는 가장 큰 포상이에요. 그때가 가장 벅차고 감사한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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