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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드러머 오종대

이상적 연주에 대한 해답
재즈 드러머 오종대

인티그레이션(Integration) 개인플레이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가 정돈된 연주를 했을 때 ‘인티그레이티드 퍼포먼스(통합된 연주)’라 한다. 재즈는 개인의 음악인 동시에 집단의 음악이 다. 그것이 재즈의 이상이다.

안녕하세요 오종대 교수님. 국내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재즈 드러머로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본인 소개와 함께 구독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91년도부터 드럼을 연주하는 음악가로 활동해오고 있는 오종 대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법 오래 했네요. 주로 재즈를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하고 있고, 2003년부터 19년 동안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실용음악학부에서 학생 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다양한 밴드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계시지만,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공연을 하는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실 것 같아요. 요즘 밴드 활동 근황은 어떤가요?
2019년 10월에 ‘트리오웍스(TrioWorks)’라는 밴드의 음반을 발매하고 2020 년엔 많은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죠. 그런데 코로나의 확산으로 거의 취소됐고, 몇몇의 공연만 간신히 온라인으로 진행하며 음악적으로는 답답한 시기를 보냈 어요. 그래서 올해는 지방 공연 위주로 계획중에 있어요. 여전히 코로나가 엄중한 상황이지만 작년보다는 성숙해진 의식으로 인해 좀 더 나아진 상황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밴드 활동으로 월드뮤직그룹 ‘디에보(Diebo)’의 첫 번째 정규 음반 작업을 시작했어요. 디테일한 작업이 많이 필요한 팀이어서 지난주 내내 녹음 작업에만 매달렸죠.

‘월드뮤직그룹’이라니 팀 색깔이 더욱더 궁금한데요. 디에보라는 밴드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소개 부탁드려요.
디에보(Diebo)는 “différents et beaux”라는 프랑스어에서 따온 이름으로 “다 르고 아름다운”이라는 뜻이에요. 서로 다른 문화적인 배경과 음악적 바탕을 갖고 있는 멤버들이 만나 이름처럼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닌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을 노래하는 밴드입니다. 멤버 소개를 하자면 샹송과 재즈를 노래하는 싱어송라 이터 시나, 서아프리카 악기 발라폰과 고니를 연주하는 부르키나파소 왕실 음악가 출신 아미두 발라니, 그리고 우리나라 전통 악기인 대금, 소금 연주자이면서 대학원에서 재즈를 공부한 박송이 씨가 함께하고 있고요, 리듬 섹션은 재즈를 연주를 해온 저와 건반의 원용조 씨, 베이스 김성수 씨가 맡고 있어요.

서로 다른 국적과 문화 차이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악기와의 조화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다름을 하나로 맞춰가는 데 있어서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같이 작업하며 서로 다른 문화와 성격을 확인해가는 나름의 재미도 있지만, 음악을 만드는 작업에서는 조금 까다로운 부분들이 있었어요. 국악기와 서양악기 그리고 서아프리카 악기까지 3 대륙의 악기가 처음 만났을 때, 악기의 조율이나 리듬이 조금씩 달라 어려움이 있었죠. 우선 서양악기 외의 나머지 악기들은 음정이 일정하지 않고, 정확히 나뉘지도 않아 조율을 맞추는 것부터 해야 했어요. 대금과 소금의 경우는 연주자의 호흡에 따라 음정이 조금씩 움직이기도 하고, 발라폰과 고니는 조율 자체가 440Hz(세계 음높이 표준)를 기준으로 삼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합주 과정에서 서로의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며 하나씩 맞추어 갔고, 처음에 어울리지 않던 소리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새로운 음악이 되면서 제법 재미있고 아름다운 소리로 변해갔어요. 기존의 재즈밴드와는 다른 재미와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에 색다른 결과물을 기대하며 작업을 하고 있어요.

재지 / Jazzy
재즈의 분위기를 표현할 때 흔히 쓰인다. 가장 재즈 다운 재즈, 흥겹고 행복감이 넘치는 재즈를 말한다
.

이처럼 여러 장르의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시는데, 그 관심의 시작이 어디부터였는지 궁금하네요. 처음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어렸을 때 포크 음악을 좋아해서 통기타를 쳤어요. 그래서 주로 들었던 음악도 시인과 촌장, 어떤 날 같은 포크 음악이 많았고, 락밴드 들국화도 좋아했죠. 그러다 중3 때 처음 밴드를 만들고 모두의 공식처럼 공석인 베이스를 정하기 위한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바로 제가 당첨됐죠. 그렇지만 사실은 베이스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물론 드럼도 좋아하지만, 지금도 베이스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아요. 대학교는 오로지 밴드 ‘옥 슨’에 들어가기 위한 일념으로 건국대학교에 입학했어요. 베이스로 지원을 했지만 저보다 잘 치는 친구가 있어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드럼이었죠. 어떤 악기를 고집하기보다 밴드를 통해 음악을 완성하는 그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가장 늦게 시작해서 현재까지 드러머로 활동 중이네요.

드러머로 처음 활동하신 당시 옥슨 밴드 활동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밴드 옥슨 활동은 저한텐 큰 즐거움이었어요. 중·고등학교 밴드와는 다르게 늘 연주할 수 있는 합주실을 가지고 있고,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행복이었죠. 옥슨에 합류한 뒤로는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실에서 보냈어요. 수업을 안 듣다 보니 학점도 거의 바닥이었죠. 밴드 경험이 충분히 있었지만, 드럼 연주는 처음이다 보니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합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다른 멤버 들에 비해 부족함을 많이 느꼈죠. 그래도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으로 연습을 엄청 열심히 했어요. 1990년 9월 처음 스틱을 잡아 타이어에 대고 스트로크를 연습했고 1991년 10월쯤엔 KBS 대학가 요축제에 참가하여 옥슨이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제법 열심히 했었죠. 수상 후 음원을 위해 녹음실에 갔을 때는 엔지니어 선생님의 계속 드러머로 활동해 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을 듣고 더욱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 후로는 다른 악기보다 드럼에 더 집중을 하게 되었죠.

“어떤 악기를 고집하기보다 밴드를 통해 음악을 완성하는그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어쨌든 가장 늦게 시작해서 현재까지 드러머로 활동 중이네요."
 

그렇게 드러머로서 활동하시다가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을 두고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군대를 전역한 이후 학교 수업 대신 외부 공연을 주로 했었는데, 그때 클럽에서 한창 재즈를 연주했어요.
그 당시 한국에 재즈 드러머가 많이 없다 보니, 부족한 경력을 갖고도 색소폰 연주자 정성조 선생님의 퀸텟 에서 활동하거나 트럼펫 연주자 이주환 선배님 같은 훌륭한 분들과 연주하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죠. 한창 재즈에 욕심이 생기던 시기에는 재즈 드럼에 대한 교재나 유튜브 같은 영상도 많이 없었기 때문에 음반만 듣고 따라 연주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어쩌다 한 번씩 미국이나 유럽의 아티스트가 와서 연주하면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하니 그쪽으로 호기심이 생겼죠. 처음엔 버클리를 가고 싶었는데, 그 당시 단정치 못한 제 외모 때문에 비자 발급이 거절됐어요. (웃음) 같은 시기에 첫 해외 페스티벌을 네덜란드로 가게 되었는데,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선진 교육 시스템을 갖춘 그 나라에 대단히 호감을 느끼고 공부를 해야겠다 마음먹은 거죠. 학비도 그 당시 한국보다 저렴했고요.

네덜란드에서 접한 재즈는 미국의 재즈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던가요?
아무래도 재즈라는 음악은 미국, 특히 뉴욕을 중심으로 발전된 음악이기 때문에 유럽의 재즈는 미국의 메인스트림과는 조금 결이 달랐어요. 이미 유럽의 뮤지션들은 재즈에 자기네 개성을 더하는 독특한 시도를 하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단정 지어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의 음악이 좀 더 흑인 뮤지션 중심의 에너지 넘치고 그루비한 연주였다면, 유럽에서는 특유의 클래시컬한 음악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화성이나 사운 드가 대단히 지적이며 정교한 모습이었어요. 재즈를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유러피안 재즈라 불리는 스타일로 구사하고 있었죠. 때마침 2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뉴욕에서 연주하는 많은 미국 뮤지션들도 유럽의 음악에 대단히 호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덩달아 본토의 재즈 시장이 조금씩 주춤함과 동시에 유럽 각지에서 페스티벌들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미국 뮤지션들의 주 활동마저 유럽 투어가 되었죠. 유럽 뮤지션들에게 음악은 경쟁이 아닌 축제였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음악에 집중하는 에티튜드가 저에게도 좋은 영향을 많이 미쳤던 것 같아요. 좀 더 다양하게 보는 관점을 길렀고, 장점을 캐치할 수 있는 선견을 얻었죠.

애드리브 / Ad lip
‘자유롭게’를 의미하는 라틴어 ‘ad libitum’을 줄인 표현으로, 재즈에서는 즉흥 연주를 뜻한다.

재즈가 국내에서 활발한 장르는 아니다 보니 비음악인에게 자유분방한 재즈 드러밍은 더욱 생소하게 와닿습 니다. 구독자분들에게 자세히 소개를 해드리고 싶은데, 재드 드럼의 리듬은 다른 장르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아요. 타악기의 특성상 밴드를 춤추게 하고, 듣는 사람도 함께 춤추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재즈라는 음악에서 드럼의 역할도 그리 다르지 않아요. 다만 재즈에서 조금 다른 점이라면 리듬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는 것이에요. 보통 팝이나 락, 클래식에서의 타악기라면 대본이 있어요.
작가나 편곡자에 의해서 잘 짜여진 대본을 충실히 따르며 춤추게 만든다면, 재즈는 누가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리얼 예능 프로 같은 거예요.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재미나 메시지를 향해 자신의 모든 언어적 테크닉을 동원하여 매 순간 만들어내는 거죠. 그것이 바로 즉흥성이고, 아무거나 던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거기에 맞는 반응을 하는 것이에요.

헤드 / Head
연주곡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주요 멜로디 부분을 말하며, 보통 재즈 합주에서 가장 먼저 연주된다.

현재 동아방송대학교 실용음악 학부장으로서 수많은 학생들을 거쳐오셨어요. 교수님 연주를 보고 많은 제자분이 재즈에 관심을 가질 것 같은데 어떤가요?
생각보다 재즈를 연주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비율은 적어요. 예전에도 다들 호기심은 있었지만, 정작 재즈를 좋아하며 연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았어요. 왜냐하면 시작하기 어렵거든요.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기 위해서는 지겨운 연습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재즈 연주는 음악을 하는 데 있어 다른 사람의 연주를 잘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내가 어떤 말을 할지 명확히 그릴 수 있는 에너지를 길러주기 때문에 음악가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취미생활이라며 학생들을 설득하고 있는 중이 에요.(웃음)

그렇다면 연주자를 꿈꾸는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무엇인가요?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지금 악기 전공하는 학생들이 가장 희망하는 꿈은 세션맨이에요. 물론 지금 친구들이 화려한 무대나 녹음실에서 유명한 뮤지션들과 같이 음악활동을 하며 돈을 버는 것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세션맨이라는 직업이 앞으로도 존재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거죠. 지금 처럼 전문적 형태의 세션 연주자보단, 본인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자연스럽게 세션 활동을 같이 하게 될 것 같아요. 예전에는 녹음실의 문턱이 굉장히 높았고, 녹음을 안정적으로 마칠 연주자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어요.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고 그렇기에 세션의 집중도가 굉장히 높았죠. 하지만 지금은 세션이 가능한 연주자가 너무 많아졌어요. 자연스레 각 분야의 최고의 연주자를 쓰게 되는 거죠. 또 많은 프로듀서들과 작곡가들이 실연 부분을 가상악기로 해결하기도 하고요. 그만큼 세션이라는 일 자체가 줄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연주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다면, 나의 음악에 집중하고 내가 잘하는 것을 찾는 것이 더현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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